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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국립한글박물관

by 쫑쌤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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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에 가면 국립중앙박물관만 갔었는데, 그 옆의 국립한글박물관에 다녀왔다. 전시관이 이쁘고, 전시내용도 좋고, 주변에 산책로도 잘되어있어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운영은 1월1일, 설날, 추석 빼고 연중무휴이다. 운영시간은 기본적으로 10시부터 18시, 토요일은 10시부터 21시까지 운영한다. 박물관은 보통 월요일에는 휴관인데, 국립증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들은 월요일도 늘 운영을 한다. 관람해설을 매일 10시 30분, 14시, 15시, 16시에 운영한다. 약 한시간정도 진행되는데, 역시 해설을 듣고 다시 관람하니 전시의 의도가 훨씬 잘 보였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쉽게 익혀”

“사람마다”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1443년 세종은 우리의 문자 ‘훈민정음’을 만들었다.1446년에는 새 문자를 만든 목적과 원리를 밝힌 책 『훈민정음』을 만들었고, 『훈민정음』의 머리말에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통해 꿈꾼 새로운 세상이 설계돼 있다.전시장은 『훈민정음』 머리말의 문장에 따라 7개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한글이 만들어진 배경과 그 원리를 설명하고, 한글의 실제 사용 예시를 기록한 책이다. 새 글자에 대한 정보를 설명하기 위한 책이기 때문에 한문으로 쓰여 있었다. 훈민정음은 문자의 창제자, 창제시기, 창제 배경 및 원리가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되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계속 지금처럼 말했다. 지금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초기로 간다해도 어느 누구와도 말이 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은 다르다. 모든 것을 한자를 이용하여 썼다.

 

소리는 있으나 글자가 없어 글로 통하기 어려우니 우리나라 오랜 역사에 어둠을 밝히셨도다

 

훈민정은은 세종 혼자 90% 만들었고, 왕자와 공주를 이를 도왔으면 집현전의 학자들은 감수했다고 한다. 글자를 아는 것이 권력이었던 것을, 누구보다 큰 권력을 가졌던 왕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쉬운 글자를 만든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세종의 한글 창제는 이처럼 백성을 깊이 사랑하는 애민 정신을 비록새 중국과 다른 우리만의 글자가 필요하다는 자주정신, 실생활에 쓰임이 있어야 한다는 실용정신이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1443년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은 자음글자 열일곱 개와 모음 글자 열한 개를 합한 스물여덟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뜬 다섯 개의 기본 자음 글자는 소리의 세기에 따라 획을 더함으로써 열입곱개의 글자로 확장했고, 하늘, 땅, 사람의 모양을 본뜬 세개의 기본 모음은 각 글자를 서로 합성함으로써 열한 개의 글자가 탄생했다.

글자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글자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글자 ㅁ은 입 모양을, 글자 ㅅ은 이모양을, 글자 o은 목구멍 모양을 본뜬 것이다.

현재 한글은 자음글자 열네 개와 모음 글자 열개를 사용하니 사라진 네 개의 글자는 글자가 나타내던 말소리가 사라지거나 잘 쓰이지 않게 됨에 따라 글자도 점점 쓰임이 없어진 것이다. 특히 아래아는 가장 최근에 없어진 글자로 훈민정음이 탄생한 순간부터 사용에 따라 계속 한글이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에 훈민정음은 계층이 낮은 사람이나 여자들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다. 한글은 왕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사용한 글자였다. 아래사진은 그 편지와 광고 등이다.

 

 

 

훈민정음은 450여 년이 흐른 1894년에야 공식적인 나라의 글이 되었다.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공적으로 작성한 문서에서는 여전히 한문이 먼저였던 문자 생활에서 한글이 새롭게 주목된 것이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김에 따라 한글도 국문의 지위를 잃고 말았다. 당대 지식인들은

한 민족의 정체성은 그 말과 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고,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글에 대한 연구, 정책, 교육, 문학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주시경과 제자들이 쓴 최초의 사전. 현재 우리들은 사전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나라의 언어가 사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한글의 최초의 사전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졌다.

주시경의 제자들은 '말모이'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그 후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해 우리 말글을 연구했다. 이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꾼 뒤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등을 정리하였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말글을 체계적으로 한데 모은 우리의 사전을 편찬할 수 있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글을 보다 편하고 경제적으로 쓰기 위해 모아쓰기/풀어쓰기, 가로쓰기/세로쓰기 등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벌어졌고, 자판으로는 모아쓰기, 일반적으로 글은 가로쓰기를 하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편한 문자로 거듭난 한글은 문맹률 1%밖에 안되는 나라 한국을 만들어냈다.

 

전시관람을 마치고, 2층 카페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며 차 한잔을 마셨다.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등과 이어진 산책로를 거닐며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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