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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국립고궁박물관

by 쫑쌤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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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과 함께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을 다녀왔다. 해설을 듣기 위해 박물관 오픈시간인 10시에 맞춰갔는데 단체관광객들이 박물관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경복궁 수문장 의식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 있는 모습도 보였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역 5번출구와 바로 연결되고, 경복궁 바로 옆에 있어서 박물관을 관람하는 오전시간 동안에도 한국인 뿐만아니라 많은 외국인들의 방문이 끊이길 않았다.

국립고궁박물관 관람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유익한 전시를 왜 이제서야 봤나 후회할 정도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날이 풀리면 경복궁과 함께 다시 한번 방문할 예정이다.

 

 

관람시간 : 매일 10시~18시 [수, 토요일은 10시 ~ 21시]

※ 월요일에서 방문가능, 1월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은 휴관

전시해설 : 오전 10시, 오후 3시 한국어 해설, 별도 예약없음

[전시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4개 언어로 제공하는 음성안내기를 제공한다. 1000원 별도]

 

전시관 2층을 들어서면 조선의 왕조에 대한 설명, 궁궐, 생활 등에 대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궁궐의 정전은 궁궐의 가장 중심이 건물로, 그 정전 중앙에 임금의 의자인 어좌가 놓인다. 대한제국 이전 조선시대에는 유대사상에 따라 중국이 황제의 나라였으므로 어좌는 빨간색이다. 왕의 뒤에는 일월오봉도 병풍이 세워져있다.

일월오봉도에서 해는 왕을, 달은 왕비를, 다섯개의 산봉우리는 백성을 각각 상징하는 데, 왕이 국가를 두루 살피는 데 그 의의가 있으며, 왕의 덕과 권위를 상징하고 왕실의 번영을 기원한다.

 

조선의 왕은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영조, 정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 27명의 왕이 있다. 어떤 왕은 조를 쓰고, 어떤 왕은 종을 쓴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조선의 왕은 일생을 통해 다양한 호칭을 부여받았다. 태어나서는 아명, 호를 받았고, 왕으로서는 존호 등을 받았다. 왕의 사후에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왕의 공이 크면 조, 덕이 크면 종을 붙였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했고, 선조는 임진왜란을 이겨낸 왕이다. 반면 연산군, 광해군은 중종반정, 인조반정등으로 폐위된 왕이기 때문에 군에 머물렀고, 신주가 종묘에 들어가지 못했다.

 

 

어보는 왕, 왕비, 왕세자 등의 인장이다. 왕실의 인사를 책봉하거나 특별한 이름을 올릴 때 그 지위나 이름을 어보에 새겼다. 어책은 어보와 함께 올리는 책이다. 교명은 왕비, 왕세자, 세자빈을 책봉할 때 왕의 당부의 말이 쓰여있다. 어보, 어책, 교명은 사후에 종묘에 봉안하여 왕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한다.

 

 

 

왕이 쓰던 면류관은 중국이 12류이고 조선의 왕은 9류이다. 각 줄에 구슬이 9개가 꿰어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9개의 구슬은 오방색 중 빨간색, 흰색, 파란색, 검은색은 각각 주작, 백호, 청룡, 현무를 나타내며 각각 남, 서, 동, 북 네 방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정중앙이 바로 노란색을 의미한다. 후에 대한제국의 어좌가 금빛을 나타낸 이유도 이것이다.

오른쪽 그림은 순종의 어진인데, 대한제국의 황제이므로 12류인 면류관을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은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선택하면서 글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문치주의를 표방하였다. 그래서 다양한 서적이 남아있다.

조선의 왕실가계도는 선원록으로 남아있다.

 

 

의궤는 국가와 왕실에서 진행된 행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보고서 형식의 왕실기록물이다. 왕실의 모든 그림에는 왕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왕의 상징물인 일월오봉도 등을 그려 왕의 자리를 표시한다. 그래서 어진이 그렇게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왕들의 어진은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

6.25전쟁이 터지자 서울에 있던 국보와 보물 등 각종 문화재 또한 부산 피란길에 올랐다. 이 가운데 48점의 조선 역대 임금의 초상화도 들어있었다. 1954년 12월 26일에 궁중 문화재 4천여 점이 보관돼 있던 부산시 동광동 부산국악원 창고에 불이 나고 만다. 4천여 점에 이르는 유물 가운데 자그마치 3천4백 점이 잿더미가 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는데, 불에 타고 남은 조각이라도 건진 것이 다 합쳐서 18점. 나머지 30점은 화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 정조대왕 능행반차도가 굉장히 커다랗게 전시되어 혜경궁 홍씨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엿볼 수 있다.

 

유학을 통치철학으로 한 조선을 예를 기초로 사회질서를 지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국왕은 길례, 흉례, 군례, 빈례, 가례 다섯 가지로 예제를 정비했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역대 국왕들의 행적은 기록한 책으로 총 1700여권에 이른다. 국왕이 승하하면 역사 편찬 기관인 춘추관에서 여러 사관이 평소에 기록해둔 자료를 모아 실록을 편찬하였다. 사관은 매일매일 국와의 주변에 벌어지는 일을 기록한 것으로 왕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열람하지 못하였고 사관은 기록에 공정성을 기하고자 하였다. 완성된 실록은 중앙과 지방의 사고에 각각 봉안하였다. 원래는 대도시 사고에 보관하였다고 임진왜란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모든 곳이 불타자, 사고를 산으로 옮겨 절에 맡겨 보관하였다.

 

 

조선시대 왕의 밥상인 수라상은 각 지방에서 올라온 좋은 재료를 사용해 최고의 맛과 모양을 낸 음식들로 차려졌다. 수라상 상차림은 밥과 탕을 포함한 기본음식과 12가지 반찬으로 구성된 12첩 반상으로 이루어졌다. 그 다음 낮은 지위의 사람들은 9첩 반상, 7첩 반상 등 차례로 구성되어 있어서 12첩 반상은 왕실만을 위한 것이었다.

 

전시관 1층으로 내려가니, 대한제국 관련 전시실이 있었다. 대한제국 유물로는 순종과 순정효황후 어차가 인상깊었다. 대한제국의 상징 오얏꽃이 손잡이 장식으로 사용되었고, 내부도 오얏꽃 무늬의 황금빛 비단으로 마감되었다.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동차라고 한다.

 

 

대한제국의 왕궁은 덕수궁이다. 그렇다면 경복궁이 늘 조선의 왕궁이었을까?

조선에서 사용된 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이 있다. 태조가 경복궁을 세웠지만, 태종은 창덕궁을 세워 태종부터 창덕궁에서 지냈다고 한다. 성종 때는 왕실의 여왕들을 위하여 창경궁을 세웠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 창덕궁 등이 소실되자 광해군은 창덕궁을 재건하고 경희궁을 세워 지냈다고 한다. 이후 창덕궁에서 지내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크게 복구하였다. 하지만 을미사변 때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면서 러시아공사관 옆에 있던 덕수궁이 대한제국의 황궁역할을 하게되었다.

 

한층더 내려가면 지하1층에는 보이는 수장고가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을 수장고 중 하나를 보이도록 전시해놓았다. 이 부분도 색달랐다.

 

 

조선시대의 과학문화전시도 있었는데, 특히 천문과 관련된 내용이 전시되었다. 덕분에 해시계의 원리, 물시계의 원리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특히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의 내용으로 만든 미디어 전시는 압도적이었다.

 

전시를 다보고 청계천을 걸으며 집에 오는 길이었다. 벽에 익숙한 그림이 보였다. 바로 정조대왕 능행반차도였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어린이와 학생들이 체험하기 좋은 시설들도 모여 있어 체험학습으로 오기도 너무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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