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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딜쿠샤

by 쫑쌤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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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는 1923년에 지어진 테일러 부부의 가옥이다.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뜻으로 테일러 부부가 지은 집의 이름이다. 테일러 일가가 한국에서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느껴진다.

 

 

이 동네는 끝이 막혀있는 골목길이 많아서 근처에 가서도 오르막길을 계속 헤맸다. 그래도 막상 장소에 가면 이쁜 건물의 모습이 힘든 마음이 사르륵 녹는다. 딜쿠샤는 서양식 건축기법으로 지어진 서양식 집이어서 1920~30년대 국내 서양식 집의 건축기법과 생활양식을 잘 보여준다.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9:00~18:00

전시해설 :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에서 가능하다. 해설을 예약못했더라도 무료로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들을 수 있다.

https://yeyak.seoul.go.kr/web/reservation/selectReservView.do?rsv_svc_id=S240223091733675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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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테일러는 영국연극배우였던 릴리와 결혼하여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한국에서 광산과 '테일러 상회'를 운영하였다. 테일러 상회는 지금의 시청 근처에서 다양한 수입품을 판매하는 종합무역상사이다. 특히 테일러 상회는 1912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자동차 영업을 시작한 곳이다.

 

어? 테일러 상회를 분명 어디서 들어봤었는데? 했었는데, 돈의문 박물과 마을 안에 '돈의문 구락부'라는 테마전시관이 있다. ‘구락부俱樂部’는 ‘클럽Club’을 일본식으로 음역한 근대 사교모임을 말하며 한국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과 개화파 인사 등이 파티, 스포츠, 문화교류 등이 이루어졌던 공간이다. 거기에 테일러 상회에 대한 전시도 있었다. 그 곳의 분위기가 1920~30년대의 서양인들의 사교파티의 현장이라면 딜쿠샤는 그 시대의 서양식 집인 것이다.

 

딜쿠샤의 1층은 지인들과 파티를 여는 공간이다. 딜쿠샤의 모든 방에는 추운 한국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벽난로가 있다.

 

 

딜쿠샤의 2층은 메인 생활공간으로 테일러 일가의 동서양 물품들이 융합된 생활공간을 엿볼 수 있다. 자수병풍이 멋진 장소였다.

 

사실 1층 전시를 볼 때만 하더라도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살았던 부자 서양인들의 생활사가 뭐가 중요해서 이렇게 이 집이 문화재가 되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 답은 2층에 있었다. 테일러는 사업가이기도 했지만 1919년에 AP 통신원(비영리통신사의 미국연합통신의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고종의 국장, 3.1운동, 제임리 학살 사건, 독립운동가의 재판 등을 취재하였다.

1911년 2월 28일 테일러 부부는 아들을 출산하기 위하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 때 간호사가 독립선언서를 테일러 부부에게 몰래 건냈다. 테일러 부부는 이것이 독립선언서라는 것을 알아챘고, 즉시 3.1운동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여 동생에게 전달하였다. 동생은 이 기사를 구두 뒤축에 숨겨 일본 도쿄로 가서 전신으로 미국에 보냈고, 독립선언서가 국외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기사는 3월 13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리게 된다. 엘버트의 기사는 일본의 반인륜적인 탄압 행위를 알리고 한국에 우호적인 국제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베델, 맥켄지, 스코필드 등과 같은 서양인들은 언론활동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베델은 항일 신문인 '대한매일신보'를 발간하여 일제의 침략 정책을 비판하고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하였다. 맥켄지는 '한국의 비극',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 등의 책으로 영국 사회에서 한국의 독립운도에 대한 동정과 반일 분위기를 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 스코필드[석호필]는 일제가 경기도 수원 제암리 주민들은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을 때 현장을 조사하고 복서를 국외의 언론 기관에 보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한국에 거주하던 적국 국민들을 수용소에 구금하였다. 테일러 역시 서대문형무소 옆에 있는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시우어 하우스'에 끌려가서 구름되었고, 한국에서 추방되었다.

 

딜쿠샤 관람을 마치고 근처 독립문공원을 거닐었다. 독립문의 독립은 식민 통치로부터의 해방을 너머 홀로 설 수 있는 주권 국가라는 의미로 열강들 사이에서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세계에 알리려는 모든 국민들의 노력이 담겨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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