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서울공예박물관-장인, 세상을 이롭게하다

by 쫑쌤 2024. 5. 31.
반응형

옛 풍문여고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서울공예박물관은 2021년에 개관하였다. 한국에서는 최초의 공립공예박물관이다. 넓은 운동장은 잔디공원으로, 여러 부속건물들은 여러개의 전시동, 교육동으로 바뀌었다. 전시는 크게 전시1동, 전시2동, 전시3동에서 상설전시로 이루어진다. 전시1동, 전시2동에서는 공예역사전시를, 전시3동에서는 직물공예전시를 한다.

 

오늘은 전시1동, 전시2동에서는 공예역사전시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를 관람하였다.

관람시간 : 10:00 ~ 18:00 (월요일, 1월 1일 제외)

전시해설 : 12:00, 15:00

 

 

고대에서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공예가 발전했다. 장인들의 손에서 광석은 금속공예로, 흙은 토기를 거쳐 도자기로, 나무와 전복은 나전칠기로 재탄생하였다. 서울공예박물관 전시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의 전시를 볼 수 있다.

 

금강령과 금강저. 금강저는 여러 전시를 통해 많이 보았지만, 금강령은 처음보았다. 금강령의 크기가 손가락끝에서 손목정도의 크기가 이 작은 크기에 세밀하고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세밀하게 표현된 금강령은 밀랍 주물로 전체 형상을 만든 뒤 세부 문양을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금강령에는 열한 분의 불교 존상들이 한 기물에 모두 표현되었다. 금강령 안에 매달려 흔들었을 때 맑은 소리를 내는 탁설은 여의주를 문 물고기 형태이다.

금강저는 수행자의 번뇌를 깨뜨린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 금강령은 사찰에서 맑은 소리로 인간의 마음을 정화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용도로 쓰였다.

 

 

 

이것은 고려시대의 향완이다. 향완은 향로로 생각하면 된다. 청동 은입사 향완으로 여러 무늬와 함께 용도 그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용 모양을 불교에서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려시대의 대표유물은 뭐니뭐니해도 고려청자다. 고려청자는 중국의 기술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고려청자는 특유의 비색으로 세련미를 더하면서 12세기 전반기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12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이 본격화 된다. 상감 기법은 그릇의 표면에 도구를 이용해 문양을 새긴 후, 그곳에 흰색이나 붉은 색, 검은 색 등의 흙으로 채워 문양의 생동감이 느껴지게 하는 기법이다.

 

 

구름과 학이 그려진 청자상감매병이다. 매병이란 이렇게 입구가 좋은 형태의 도자기를 의미한다.

 

이번전시의 하이라이트. 바로 고려시대 나전경함이다.

 

현존하는 고려 나전경함은 전 세계적으로 아홉 점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 국내에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나전경함을 네 명의 장인이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협업하여 재현하였다.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장인들이 이 나전경함을 전통 방식으로 재현하는 과정이 전시되어 있는데, 너무 수고롭고, 심혈을 기울인 작업들의 연속이었다. 잣나무로 틀을 짜고, 옷칠을 하고, 나천과 꼰 황동선을 이용해 문양을 표현하였다. 1920년대에 나전 모양을 만들 때에는 실톱을 사용했지만, 그 전에는 가위 등을 이용해서 세심하게 일일히 오려내었다고 한다.

 

 

다음 전시실인 아래 층에서는 조선시대의 공예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어책은 조선시대 때 왕비, 왕세자, 왕세손 등을 책봉하거나 왕, 왕비, 세자, 후궁 등에게 새로 이름을 올릴 때 그 사실을 담긴 기록이다. 왕, 왕비의 경우 옥으로 제작되어 옥책이라 하였고, 왕세자, 후궁의 경우 대나무로 만들어져 죽책이라고 하였다. 어책은 그 시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남녀 장인들 100명 이상이 협업을 통해 제작한 왕실 공예품이다.

이 작품은 '경혜인빈 상시호 죽책'으로 영조가 선조의 후궁이었던 인빈 김씨의 시호를 올릴 때 제작한 것이다.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행사에 관련된 내용들을 정리한 기록물이 바로 의궤이다.

공예품에도 그 견본이 존재하였고, 그것을 견양이라 부른다.

 

분청사기는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제작된 자기이다. 그릇의 형태, 문양의 구도, 표현 기법 등이 제작된 지역과 관계없이 거의 동일하다.

 

국영자기 생산 기지라 할 수 있는 '분원'이 경기도 광주에 처음 설립되었다. 여기에서는 조선만의 특징적인 백자와 청화백자가 제작되어 왕실에 납품되었다.

 

 

용과 구름 무늬가 그려진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이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분원에서 제작되었다.

 

왕실 공예품의 특징은 빨간색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화각함은 소뿔을 아주 얇게 네모나게 만들고, 거기에 그림을 그린 후, 나무로 만든 함 표면에 붙여 장식하였다. 소재 자체가 희귀하고 가공도 까다로워 왕실에서 사용했다. 이 화각함에는 기린, 학, 사슴, 거북 등 불로장생과 부귀를 상징하는 각종 동식물과 자연물이 문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책이 그려진 병풍을 책가도병풍이라 한다. 정조가 그렇게 책을 좋아했다고 하니, 그에 영향을 받은 사대부들이 서책이 그려진 책가도병풍을 너도나도 집에 장식했다. 이 작품은 조선 왕실 화원이었던 이택균이 그린 병풍이다. 인장의 위치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가구 하나를 제작함에 있어서도 소목장을 집으로 불러 맞춤가구를 제작하였다고 한다. 아래는 장과 농인데, 장은 일체형이고, 농은 분리형이라 한다.

 

이번에는 대한제국의 공예를 살펴보자.

고종 황제는 자주적인 강대국을 만들기 위해 외국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선진 문물을 견학하게 하였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독립관을 설치하여 도자기, 나전칠기, 비단, 금속공예품 등을 출품하였다.

 

 

또한 전통 공예를 부흥시키고 공예의 산업적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근대적 교육기관과 미술공장을 설치하였다. 1907년 관립공업전습소를 설립하였고, 1908년 한성미술품제작소를 설립하였다.

 

이것은 황실용 제기이다. 한성미술품제작소에서 제작된 것으로 근대기술은 프레스를 이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문양을 음각으로 표현하였다. 바닥에는 한성미술이라고 새겨 제작처를 표시하였는데, 점점 공예가 브랜드화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전통 공예가 위축되고 산업 공예가 일상을 파고들었다. 공예품이 관광 상품이나 기념품으로 주목받았고, 생산된 공예품들은 백화점이나 공예 상점을 통해 유통되었다.

 

전성규 장인의 낚시하는 어부그림 사각상이다. 금속세공용 실톱 사용법을 조선에 들여온 사람이 바로 전성규 장인이다. 나전의 한층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곡선이 돋보인다.

 

공예박물관의 교육동 전망대에 올라가면 열린 송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아름다운 공예 작품 속 장인정신을 찾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복촌을 여기저기 다니며 정말 많은 공예체험관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체험을 함께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서울공예박물관의 또다른 상설전시로는 직물공예전시가 있다. 아래는 그 포스팅이다.

2024.05.31 - [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 서울공예박물관-사전가직물관

 

서울공예박물관-사전가직물관

이 부지는 작년에 개방된 곳이다. 일제강점기엔 친일파 소유였다가, 해방 후에는 미국 소유로 넘어가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였다. 올해 말까지 개방되었다가 이 자리에 곧 이건희 기념관이 들어

limchung90.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