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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운현궁'에 다녀와서

by 쫑쌤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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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은 원래 이하응의 사저였다. 그러나 후사 없이 사망한 철종의 뒤를 이어 이하응의 둘째아들이 국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고종이며, 이항응은 흥선대원군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고종을 보조한다는 명분 아래 운현궁은 종친부의 중심이 되었다.

대원군이 실각하자, 운형궁은 대원군이 은거하며 '석파란'에 매진하였던 예술적 공간이 되었다. 석파는 흥선대원군의 호이다. 한편, 부암동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서이기도 하였다.

이하응, 목란도, 1888

 

석파란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흥선대원군은 난을 참 잘그렸다.

운현궁은 굉장히 열린 공간이다. 운현궁의 안채는 이로당과 노락당이 있는데, 노락당에서는 전통혼례가 치뤄지고 있었다.

이로당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로 평면은 ㅁ자형인데, 한 가운데 마당이 있었다.

 

운현궁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다.

 

운현궁의 한켠에는 기획전시를 하고 있었다. 전통 그림을 현대작가가 그린 그림인데 역시 꽃과 나비는 이쁘다.

 

화접도 족자, 2018

주말에 방문하니 많은 관람객이 있었다. 아이들이 마당에 앉아 가이드에게 교육받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이야기가 있는 운현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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