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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국회[국회박물관 및 국회참관]

by 쫑쌤 2024.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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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의 상징, 국회의사당. 국회가 열리는 대회의실을 참관할 수 있다고 해서 신청해보았다.

 

국회참관은 예약제로 이루어지며, 신분증이 필요하다. 150명까지 예약 가능하며 참관희망일 90일전부터 예약 가능하다. 당일 예약을 불가능하며, 참관은 30분정도 이루어진다.

국회 참관 : 월 - 금 10시, 11시, 14시, 15시, 16시, 17시 / 토 10시, 11시, 12시

아래는 예약 사이트이다.

https://reservation.assembly.go.kr/reserve/contents/booking/contentsList.do?clsCd=VISIT

 

대한민국국회 통합예약

통합예약 시스템은 국회에서 제공하는 예약서비스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여 예약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국회박물관, 국회참관, 문화행사, 국회도서관 등 예약업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

reservation.assembly.go.kr

 

국회의사당 출입구에는 항상 누군가가 지키고 있어서 국회직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누구나에게 개방되어 있다. 들어갈 때 신분증 검사 등을 결코 하지 않으며, 왜 왔냐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참관한다고 해서 국회의사당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뒷편에 전용 출입구가 있다. 정시에 다함께 모여 출발한다.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국회의의사당 건물은 1975년 8월에 준공된 건물로, 민트색의 돔이 상징이다. 그런데 이 돔은 원래 동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동판 자체의 붉은 색을 띠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동판이 녹슬어 점점 지금과 같은 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돔 밑에 건물은 2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24개의 기둥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뜻하며 돔지붕은 국민의 의견들이 찬반토론을 거쳐 하나의 결론으로 모아진다는 의회민주정치의 본질을 상징한다.

 

국회의 본회의장은 실제로 보니 굉장히 넓었다. 국회에는 두 개의 대회의장이 있다. 원래 양원제를 염두에 두고 두 개의 회의장을 만들었으나 우리나라 국회는 단원제를 선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최교, 안보 등을 담당하는 상원과 법률안 발의, 의결, 국정조사, 예산안 심의 등을 담당하는 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체택하고 있다.

 

해설은 초등학생들 기준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지만, 이것에 흥미를 가지려면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본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더 적절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박물관에서는 어린이 박물관도 운영하며, 국회체험관도 있으니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학생들은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https://reservation.assembly.go.kr/reserve/contents/booking/contentsView.do?sn=K20222348898650

 

다음으로 국회박물관을 방문했다. 국회박물관은 상설전시가 있어서 예약없이 방문가능하다.

 

관람시간 : 월 - 금 10시 ~ 18시, 토 10시 ~ 13시 [일요일, 공휴일, 근로자의 날, 국회개원기념일 5월 31일 제외]

 

국회박물관은 총 4개의 전시실로 1전시실 대한민국임시정부, 2전시실 제헌국회부터 제12대 국회, 3전시실 제13대국회 부터 현재까지, 4전시실은 국회의장과 관련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 1, 2 전시실에서는 로봇이 비치되어 있어서 해설도 들을 수 있었다.

 

1919년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 1회 회의가 열였다. 여기에서 임시의정원이라는 명칭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하였다. 9년 전 일제에게 빼앗긴 대한제국으로의 복귀가 아니며, 국민이 주인인 나라인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것이다. 이 개념은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에도 명시되고,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1932년 상하이에서 한인 애국단 단원인 윤봉길이 폭탄을 던졌다. 이 의거를 통해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일어났고, 중국 정부의 지지와 다양한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날로 심해지는 일제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임시의정원은 1932년 상하이를 떠나 1940년 충칭에 도착하기 전까지 8년 동안 전장, 항저우, 자싱, 난징, 치장, 충징 등 등지로 옮겨다녔다.

 

한국독립당으로만 구성되었던 임시의정원에 조선민족혁명당등이 참여하여 통일의회로 구성되자 임시의정원 내에 여당과 야당이 생겨났다. 한국독립당이 여당의 역할을, 좌파 계열 정당이 야당의 역할을 했다. 한편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을 자신들의 관할 아래에 두면서 활동을 제약하려 하자, 임시정부는 힘을 모아 이를 저지했다.

 

임시의정원에서 활약했던 분들을 살펴볼 수 있다.

 

 

광복이 된 이후에도 대한민국에는 평화가 오지 않았다. 6.25전쟁이 몰아쳤고, 이승만 정부의 독재정치가 지속되었다. 1960년 부정선거로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에 참가했다가 실종된 김주열 학생의 시체가 발견되자 시위는 더욱 불이 붙었고 4.19혁명이 일어났다. 4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이제 양원제로 구성되어 새로운 국회가 뭘 좀 시도해 볼까 했으나,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국회는 해산되고,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었다. 박정희 시절에는 한일협정 비준으로 갈등이 있었다. 국민과 정치권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5년 6월 22일 도쿄에서 한일협정이 정식으로 체결되었다. 많은 야당 의원들이 의언직 사퇴서를 제출하며 맞섰고, 막으려는 야당과 진행하려는 여당 의원 간의 충돌이 있었지만, 야당 의원이 불참한 채로 정부 원안대로 가결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한일회담 반대시위를 벌였고, 정부는 이 시위를 적극 제압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이번에는 1979년 12.12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민주화를 바라던 전 국민의 반발과 시위가 이어지자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자 전두환 대통령의 독재정치는 막을 내렸다.

 

사실 2전시실을 보는 내내 숨이 막혔다. 광복 후 평화가 찾아왔나 했더니 전쟁, 독재정치, 군사정변, 독재정치, 군사정변, 독재정치의 반복. 힘이 약한 나라는 이렇게밖에 굴러갈 수 없는 것인가 개탄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제 민주주의는 왔는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1990년대 들어와서야 보장되기 시작했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게 됐고, 국회의 역할과 권한이 보다 커지게 되었다.

 

국회박물관을 갔다가 쉴 겸 한강이 보이는 국회의사당 카페, 강변서재에 갔다.

 

평일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만석이었다. 결국 자리에 못앉고 뷰만 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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