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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전쟁기념관

by 쫑쌤 2024.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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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기념관을 다녀왔다. 전쟁기념관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알고보니 국방부가 바로 건너편에 있었다. 오, 저기에 대통령집무실이 있구나. 

 

실제로 가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에 쌓아올린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전시를 관람했다. 

 

전쟁기념관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기증실, 대형유물전시실, 야외전시장, 어린이박물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미리 해설을 신청하여 6.25 전쟁실을 해설사와 돌며 관람하였다. 6.25전쟁실은 북한군의 남침 배경부터 전쟁의 경과 및 정전협정조인까지 6.25 전쟁의 전 과정을 전시해놓았다.

 

1943년 11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의논하기 위해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모인 미국, 영국, 중국의 정상은 한민족이 독립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한반도의 독립문제는 테헤란회담, 얄타회담, 포츠담회담을 거치며 '한반도를 5년간 신탁통치 후 독립시킨다.'라는 내용으로 구체화되었다. 미국은 항복을 거부한 일본에 대한 응징으로 1945년 8월 6일, 9일에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확인한 소련은 8월 8일 일본과 전쟁을 선포하고, 두만강을 건너 한반도로 진격하였다. 일본은 8월 15일에 항복하였고, 한민족은 광복을 맞이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주체적인 독립은 얻지 못하였다.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할 것을 우려한 미국은 1945년 8월 15일 북위38도선을 기준으로 북쪽에서는 소련군이, 남쪽에서는 미국이 각각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키자고 소련에 통보했다. 38선은 단순 군사적인 경계선일 뿐이었으나, 이후 군정이 실시되고 미국과 소련의 관계가 대결구도로 바뀌면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첨예한 대치선이 되고 말았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회담에서 논의된 신탁통치 문제는 한국 국민들에게 격렬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중 좌익 세력이 신탁통치를 찬성하면서 이 문제는 좌, 우익 간 대결이 되었다. 유엔은 1948년 1월 민주 선거를 통한 한국의 통일정부 수립을 결의했으나 소련은 선거 관리를 위해 파견된 한국임시위원단을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게 함으로써 결국 그 해 5월 10일 남한의 단독 선거가 치러지고, 8월 15일 유엔에 의한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였다. 북한에서는 9월 9일 소련의 주도로 공산 정권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49년부터 김일성은 소련의 최고지도자인 스탈린에게 남한 침략을 승인해 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다. 미국과의 마칠을 우려해 스탈린은 이 제안을 몇번이고 거절했다. 하지만 소련의 원폭실험성공, 중국의 공산화 등 국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탈린도 입장을 바꾸었고, 1950년 3월 말부터 김일성과의 회담을 통해 남침전쟁을 승인하였고, 중국 공산당 주석인 마오쩌둥도 김일성과 스탈린이 합의한 내용을 보고 미국이 참전할 경우 지원을 약속하였다.

 

1950년 6월 25일, 갑작스런 북한의 남침으로 남한은 전쟁 3일만에 수도인 서울을 빼앗기고 말았다.

 

북한과 남한의 병력차이는 엄청났다. 북한은 소련에게 지원받아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군인 수, 전차의 유무, 전투기의 유무 등 모든 면에는 남한은 부족했다. 남한에는 전투기가 없었고, 보유한 항공기라고는 12대의 연락기와 10대의 연습기뿐이었다. 전쟁 중 조종사가 낮은 고도로 비행하는 사이 뒷자리에 탑승한 관측사가 직접 폭탄을 들고 창문을 통해 떨어뜨려야만 했다. 이후 미군이 전폭기를 지원해 주기로 하자, 10여 명의 조종사가 일본으로 건너가 훈련을 마치고 전선으로 귀한하여 공군으로 출격하였다.

 

 

전쟁에는 수많은 학도병들도 참전하였는데, 전사한 학도병의 가슴팍에 남아있던 편지내용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용을 읽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미국의 6.25전쟁 참전 이후 유엔회원국들의 참전 제의가 잇따라 16개국의 전투부대와 5개국의 의료지원단이 참전하게 되었으며, 유엔군 사령관에는 맥아더 장군이 임명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국군은 38선을 넘어 북진을 하였다.

 

이번 방문은 6.25전쟁의 역사와 그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피해자와 영웅들을 남겼던 전쟁에 마음아팠고, 다시 한번 평화로운 우리의 삶에 감사하게 되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보며, 이 참혹한 과정을 아직 겪고 있을 우크라이나에 가슴아프고, 혹시 모를 전쟁을 겪을 수도 있는 우리들, 그리고 우리의 자식들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마침 전쟁기념관에서는 리얼월드와 합작한 '로스트 솔저'를 플레이할 수 있다. 6.25전쟁과 관련된 내용으로 무료로 진행되니 플레이해보면 좋을듯하다. 나도 친구과 아주 재밌게 하였다.

https://realworld.to/projects/_qO65kJLuk7jhCTE0YqvfA

 

[[메모리시네마] 로스트 솔져] | 플레이! 리얼월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라

realworld.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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