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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by 쫑쌤 202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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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처음으로 기억나는 대통령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대선 때 목포의 분위기는 어린 나도 느낄 수 있을만큼 뜨거웠다. 후에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목포에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이 세워졌다. 5월에는 튤립이 너무 예쁜 삼학도공원에 위치한 이 장소에 다녀왔다.

 

삼학도 내부에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바다 바로 옆에 있지만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물로 꾸며진 정원이 바라만 보기만 해도 좋다.

 

 

개관 : 화~일 09:00~18:00 [월요일, 1월 1일 제외]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서 문의하면 해설해 주는 것 같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인으로서는 일곱번째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다. 그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바가 컸다. 한국에서 수십 년간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 속에 계속된 생명의 위협과 기나긴 망명 생활에도 김대중은 한국 민주주의의 대변자였다. 대통령으로서 김대중은 민주 정부체제를 공고히 했고, 한국내의 화합을 도모했다. 또한 햇볕정책으로 남북한 사이의 전쟁과 적대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영부인이 노벨평화상 만찬회에 입었던 의상. 한복 속 무궁화가 어찌나 내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던지.

 

 

노벨상 관련 전시가 끝나자 김대중 대통령의 출생부터 정치 입문과정, 정치생활 등의 전시가 이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에 대항했던 선거유세에서는 민주주의를 향한 희망으로 장충단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김대중은 일생동안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첫번째는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잡혀서 총살 직전 목포형무소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사건이다. 두번째는 1971년 총선 지원유세 당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사건이다. 그리고 세번째, 네번째는 1973년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납치사건으로 중앙정보부 요원이 김대중을 살해하려다가 실패하자 다음날 바다에 수장하려 했으나 미국정부의 개입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사건이다. 마지막은 1980년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 인물로 김대중을 지목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결국 1998년 김대중은 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당시 IMF시기였기 때문에 국정목표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을 목표로 삼았다.

 

 

 

무엇보다 햇볕정책을 통해 냉전의 벽을 깨뜨리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전에도 한번와서 돌아보면서 김대중대통령의 정치생활과 그 업적에 대해 놀라워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존경하게 되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누리는 민주주의, 평화, 인권은 수많은 희생 속에 이뤄진 것이었구나 새삼 느꼈다. 전쟁이 일상화된 지금, 평화로운 세계,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꿈꿔본다.

 

 

전시 관람이 끝나고, 삼학도 공원을 산책하였다. 저 물이 바닷물이기 때문에 바다의 냄새도 맡았던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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