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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선정릉

by 쫑쌤 2024.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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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한복판에 푸르른 숲이 있다. 바로 선릉과 정릉이다. 산책삼아 선정릉 안을 거닐었을 때도 역사적 가치를 떠나 자연을 느끼는 것만을로도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번에는 해설과 함께 본격적으로 돌아보기 위해 방문했다. 싱그러운 4월을 느낄 수 있는 매우 만족스러웠던 발걸음이었다.

선정릉은 선릉과 정릉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선릉은 조선 성종와 그 비 정현왕후의 능이며 정릉은 성종과 정현왕후의 아들 중종의 능이다. 성종은 세조의 손자로 세조 대부터 편찬하던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1485년(성종 16)에 반포하였고, 1492년(성종 23)에는 『대전속록』을 완성하여 법제를 정비하였다. 또 국가 의례를 정리한 『국조오례의』를 완성하여 반포하였고,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악학궤범』 등을 편찬하여 조선초기의 완성시킨 왕이다.

 

조선왕릉은 총 42기가 있고, 2기(태조의 두 왕비의 릉)는 북한에, 40기는 남한에 있다. 조선은 총 27대의 왕이 있고, 왕과 왕비는 보통 같은 곳에 모셔져 있지만 따로 모셔져 있는 경우가 있다. 또한 추존왕과 그 비의 능까지 포함한다. 임진왜란 때 도굴된 선정릉을 제외하고는 모든 릉이 훼손되지 않고 잘 관리되었다. 조선왕릉과 같이 500년 이상 이어진 한 왕조의 왕릉들이 훼손 없이 온전이 남아 있는 예를 세계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부터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선릉은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성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현왕후의 능으로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이다.

릉에 들어가면 홍살문이 나타난다. 홍살문은 충절을 상징하는 문으로서 출입자가 경건한 마음을 갖도록 한다. 왼쪽은 혼이 거니는 향로이고, 오른쪽 길은 왕이 걷는 어로이다.

 

정면에 보이는 사당이 정자각이며, 정자각에서 선왕, 선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올리는 재인 기신재가 열린다. 지금도 실제로 1년에 한번씩 왕의 기일에 맞춰 재를 올린다고 한다.

 

 

재를 올린 후, 축문은 정자각 왼편의 예감에 넣고 태운다.

원래 릉은 일반인들이 가까이 할 수 없는데, 선릉은 왕릉을 가까이 볼 수 있다.

 

 

왼쪽이 성종대왕릉, 오른쪽이 정현왕후릉이다. 성종대왕릉이는 무덤의 형태가 병풍석과 난간석이 있고, 정현왕후릉에는 병풍석이 없이 난간석만 있는 것이 그 차이다. 무덤 주위로는 무덤을 수호하는 양과 호랑이의 상인 석양과 석호가 둘러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혼유석이라는 단상이 있는데 이 밑에는 왕과 왕비의 업적이 적힌 도자기가 묻혀 있다.

성종의 혼유석은 당시 왕이었던 연산군이 확인을 받아야 했다. 성종은 연산군에게 폐비윤씨에 관한 이야기를 숨겼다고 한다. 하지만 혼유석을 통해서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인 폐비윤씨가 억울하게 폐위되었고, 사약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이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폐위시킨게 바로 정릉의 주인, 중종이다.

 

릉 주위로는 소나무가 빙 둘러있다.

정자각 옆에는 릉을 설명하는 비석도 세워져 있다. 이건 중종의 무덤임을 설명하는 비석과 이를 모시고 있는 비각이다.

 

정현왕후릉부터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 풀숲과 어우러져 우리의 혼도 말끔히 씻기는 기분이다.

 

세계문화유산답게 너무 잘 관리되고 있었던 왕릉! 도심의 공원의 역할도, 문화재로서의 역할도 훌륭해서 이 근처에서 일하시는 분이 부러웠다. 실제로 점심시간에 많은 직장인이 산책하러 오기도 했다. 가을에 와서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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