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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미움 받을 용기

by 쫑쌤 202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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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물론 나 자신에 대한 고민거리도 많지만, 그건 어쨌거나 나에게 달린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열심히 하면 되고, 안 되는 일은 포기하면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관련된 일은 내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다. 하지만 직장생활이든 어디에서든 필연적으로 우리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이상한 사람(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최대한 피해가고, 이상한 사람(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 엮이면 빠르게 선을 긋는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제목 자체가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거절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상대방이 나에 대한 호의가 줄어들까봐,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지진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움 받을 각오를 하고 용기를 다질 수 있다니, 제목부터가 나에게 용기를 주는 듯 했다.

 

플라톤의 '대화'에서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 플라톤의 대화로 철학적 이야기를 진행시켰듯이, 이 책도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로 심리학자 아들러의 사상을 이야기한다. 청년과 철학자는 서로 대립되는 주장을 하지만 철학자의 질문과 답변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 질문에 대한 청년에게 깨달음을 준다. 나 역시 책을 읽다보면서 청년의 생각에 많은 부분 동의를 표했고, 철학자의 생각을 읽으며 많은 부분 납득하려 노력했다.

 

이 책의 주된 사상을 주장한 알프레드 아들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이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부정하고, 사람의 현재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목적론을 내놓았다. 아들러에 의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생에 놓인 문제를 직면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자유도 행복도 모두 용기의 문제이지, 환경이나 능력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 프로이트는 개인이 겪는 갈등은 내부에 존재하는 어떤 정신적 원인이 작용한 결과이며, 따라서 그러한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심리적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칼 융은 사람들은 사회 속의 상황에 맞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페르소나를 써야 하고,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대담하게 마음의 문을 열고 페르소나(가면)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 봐야 한다고 하였다. )

 

이 책의 순서의 이렇다.

 

첫 번째 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알려지지 않은 ‘제3의 거장’

인간이 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분노를 지어낸다

과거에 지배받지 않는 삶

소크라테스, 그리고 아들러

당신은 ‘이대로’ 좋습니까?

나의 불행은 스스로 ‘선택’한 것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나의 인생은 ‘지금, 여기’에서 결정된다

 

두 번째 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열등감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변명으로서의 열등 콤플렉스

자랑하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나뿐이다

권력투쟁에서 복수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인생의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붉은 실과 단단한 쇠사슬

‘인생의 거짓말’을 외면하지 말라

‘소유의 심리학’에서 ‘사용의 심리학’으로

 

세 번째 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인정욕구를 부정한다

‘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

‘과제를 분리’하라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인간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하는 방법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으라

인정욕구는 부자유를 강요한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인간관계의 카드는 ‘내’가 쥐고 있다

 

네 번째 밤.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개인심리학과 전체론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을 향한 것

왜 ‘나’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가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더 큰 공동체의 소리를 들으라

칭찬도 하지 말고, 야단도 치지 말라

‘용기 부여’를 하는 과정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면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인간은 ‘나’를 구분할 수 없다

 

다섯 번째 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과도한 자의식이 브레이크를 건다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수용을 하라

신용과 신뢰는 어떻게 다른가

일의 본질은 타인에게 공헌하는 것

젊은 사람은 어른보다 앞서나간다

일이 전부라는 인생의 거짓말

인간은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픈 사람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평범해질 용기

인생이란 찰나의 연속이다

춤을 추듯 살아라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라

인생 최대의 거짓말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라

 

첫 번째 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알려지지 않은 ‘제3의 거장’, 인간이 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분노를 지어낸다, 과거에 지배받지 않는 삶, 소크라테스, 그리고 아들러, 당신은 ‘이대로’ 좋습니까?, 나의 불행은 스스로 ‘선택’한 것,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나의 인생은 ‘지금, 여기’에서 결정된다

 

학생들이 가르치며 불우한 환경속에 사는 많은 학생들을 본다. 학생들의 심리적 불안정감이나 비행행동 등이 집안환경, 부모님 등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느낀다. 반면 이러한 환경속에서도 이쁘게 자란 학생들(밝고, 당당하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힘이 있는)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그렇게 대견할 수 없다. 객관적으로 물리적 환경이 풍족하지 않더라도 참 잘자라서 대견한 학생이 있고, 또다시 같은 삶을 반복하는 안타까운 학생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불우한 환경 등 과거의 원인에 주목해서 상황을 설명하면, 결국 다시 불우한 환경에 놓인다는 결정론에 도달하게 된다. 불우한 환경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원인론에서는 미래는 전부 과거 사건에 의해 결정되므로 현재의 나는 잘못이 없다는 위로를 해준다. 하지만 원인론을 맹신하는 한 우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반면 지금의 나의 불우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과거의 불우한 환경을 핑계 삼을 수 있다. 이것이 목적론이다. 우리는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지금이 만약 불행하다면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다. 아들러는 사람들이 그 자신의 삶의 방식을 대략 5살 전후로 선택한다고 한다. 물론 이후 다시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그 삶의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대로의 삶이 더 편하기 때문에, 일하느라 바빠서 할 수 없어란 것은 사실을 하지 않음으로써 난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 살고 싶을 뿐이며, 실제로 못했을 때의 절망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양식을 바꾸는 큰 용기를 가져야 한다.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과거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사는 나이다.

 

결국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읽으며 그러한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난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 혹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어야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두 번째 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열등감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변명으로서의 열등 콤플렉스, 자랑하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나뿐이다, 권력투쟁에서 복수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인생의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붉은 실과 단단한 쇠사슬, ‘인생의 거짓말’을 외면하지 말라, ‘소유의 심리학’에서 ‘사용의 심리학’으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을 싫어하고 자신의 단점을 크게 부각하여 본다. 하지만 이는 '나 자신을 좋아하지 말자'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방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사람들과 관계를 덜 맺고, 거절을 당해도 자신의 단점때문이라고 핑계댈 수 있으며, 이런 단점만 없으면 자신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상적인 자신을 꿈꾸며 '우월성'을 추구한다. 반면 이와 대조를 이루는 '열등감'은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열등감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만들어지므로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해석이다. (키가 155로 작다는 것은 키가 155이라는 객관적 사실이 아닌 타인과 비교했을 때 작다는 주관적 해석이다.) 우월성 추구도 열등감도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성장을 하기 위한 자극이다.

 

그러나 '열등 컴플렉스'는 열등감과는 다르다. 열등 컴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를 말한다. 내가 연애하지 못하는 이유는 집이 가난하기 때무이다며 인과관계도 없는 것을, 어떻게든 연결시켜 스스로 설명하고 납득한다.

학력이 낮으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가 어렵다. 뚱뚱하거나 못생기면 연애하기가 어렵다 등은 인과관계가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 많다. 그러나 아들러는 이에 불만을 느끼고 포기하는 것은 개인이 앞으로 한 발 내미는 것이 무서운 것이므로 현실적인 노력을 하고 싶지 않으며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라는 생활양식을 바꿀 용기가 없는 상태인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자신의 모자람을 느낀다면 가장 건전하게는 노력과 성장을 통해 채우려 해야 한다. 하지만 열등 콤플렉스에 빠지면 나는 학력만 높으면 쉽게 성공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유능함을 암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학력이라는 덮개에 가려져 있지만 진정한 나는 우월하다고 맏는 것이다. 이렇게 못난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 유명인사와의 친분과시, 명품 과시 등 권위부여로 거짓우월성을 나타낼 수도 있다. 또한 과거의 영광을 자랑한다던가,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것도 주위에서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봐 겁을 내는 우월 컴플렉스라 볼 수 있다. 자신의 불행을 자랑하며 '너는 내 맘을 이해하지 못해'라며 자신의 불행을 특별히 여기며 무기로 휘두르는 사람도 있다.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건전한 열등감은 타인과 비교하기 보다는 이상적인 자신과 비교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보다 앞서나가려고 하는 것이야 말로 가치가 있다.

 



행동의 목표
1) 자립할 것
2)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위의 행동을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
1) 나에게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가질 것
2)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을 가질 것

 

 

사실 이 부분을 읽을 때, 개인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용기가 없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결국 개인의 용기가 부족하니, 용기를 내라 조언하는 것에 불과한 거 같았다. 열등감을 느끼지만 도전하지 않는 나, 현실에 안주하는 나, 핑계를 대고 있는 나를 말하는 거 같아 마음이 콕콕 아팠다.

 

세 번째 밤.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인정욕구를 부정한다, ‘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 ‘과제를 분리’하라,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인간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하는 방법,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으라, 인정욕구는 부자유를 강요한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인간관계의 카드는 ‘내’가 쥐고 있다

 

교육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너의 미래를 위해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위해 스스로 공부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언제든 도울 준비가 있다는 의사를 전하는 것이 좋다. 아이의 공부는 아이의 과제니까. 부모는 아이의 인생의 곧 내 인생이라 생각하는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아이의 인생에서 나를 사라지게 한다. 따라서 가족끼리도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하며,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삶을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삶을 택할 것인가.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 장을 읽으며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이 생각나기도 했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에서는 상위수준의 욕구가 한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일단 하위수준의 욕구가 우선적으로 총족되어야 한다. 상위 3개의 욕구는 자신의 내부요인에 의해 충족된다. 특히 자아실현 욕구는 성장욕구이며, 나머지 네 욕구는 무엇인가 부족하기 때문에 느끼는 결핍욕구이다.

인간의 욕구 5단계 이론으로 성숙한 자아실현적 인간으로의 성장을 강조한 매슬로(1908~1970)는

아들러(1870~1937)에 대해 '해가 갈수록 아들러가 점점 더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전체성을 강조한 그의 인간상에 대해 점점 더 강한 지지를 보낸다.' 라고 언급하였다고 한다.

 

개인심리학을 주창한 아들러는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의 갈 길을 가면 된다는 개인주의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다음 장을 읽어보면 또 그런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밤.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개인심리학과 전체론,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을 향한 것, 왜 ‘나’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가,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더 큰 공동체의 소리를 들으라, 칭찬도 하지 말고, 야단도 치지 말라, ‘용기 부여’를 하는 과정,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면,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인간은 ‘나’를 구분할 수 없다

 

과제를 서로 분리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출발점으로,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사회적 관심)'이다. 불행의 근원은 인간관계에 있지만, 또한 행복의 원천 또한 인간관계에 있다. 우리는 공동체에 속해 있고, 공동체에서 소속감을 가지길 원한다.

하지만 인정욕구에 사로잡히면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사로잡혀 자신밖에 보지 않는다. 자기 자신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본인이 세계의 중심에 있으며, 타인이란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해줄 사람으로 본다. 반면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라며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헌하는 사람은 소속감을 획득할 수 있다. 이 때 공동체는 학교, 회사 등 소속된 집단이 아니라 우주적으로 광범위한 집단으로 인간관계에 곤경에 처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를 들어도 좋다. 관계가 깨질까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사는 부자유의 삶이다.

 

교육에서도 칭찬과 벌은 인간관계의 수직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용기를 부여하는 형식으로수평관계에 근거한 지원을 통해 교육을 해야 한다. 칭찬 받는 것이 목적이 되면 결국 타인의 가치관에 맞춰 삶을 선택하게 된다. 타인을 평가하지 않고, 감사나 존경, 기쁨의 인사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인간은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 타인에게 공헌했음을 깨닫는다. 아들러는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 또한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수평관계를 맺는 것부터가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시작점이다. 의식상에서 대등하고, 주장할 것은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관계 말이다.

 

교육에서도 상벌점제가 비판받는 이유는 상점과 벌점이 행동을 위한 수단이 아닌 목적이 변질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학생의 행동에 감사, 기쁨의 인사 등을 통하여 학생의 행동에 긍정적 피드백을 주고, 아이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다섯 번째 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과도한 자의식이 브레이크를 건다,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수용을 하라, 신용과 신뢰는 어떻게 다른가, 일의 본질은 타인에게 공헌하는 것, 젊은 사람은 어른보다 앞서나간다, 일이 전부라는 인생의 거짓말, 인간은 지금, 이 순간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픈 사람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평범해질 용기, 인생이란 찰나의 연속이다, 춤을 추듯 살아라,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라, 인생 최대의 거짓말,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라

 

자신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돌리고, 공동체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이 필요하다.

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주문을 거는 것을 자기긍정이라면 자기수용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사람을 변할 수 있는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때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여 바꾸는 용기를 내는 것이다.

타자신뢰는 신용이 아닌 신뢰로 무조건적으로 타인을 믿는 것이다. 내가 인간관계에 회의를 품고 남을 의심한다면 발전적인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조건 없는 신뢰를 가져야 한다. 물론 타인에게 배신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다만 조건 없는 신뢰는 수평관계를 맺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신뢰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결국은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렇게 타인과 친구가 되면 공동체의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으므로 자기희생과는 다르다. 남이 내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유대교 교리에서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한사람은 반드시 나를 비판한다. 나를 싫어하고 나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열 명 중 두 사람은 나와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없는 벗이 도니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이때 나를 싫어하는 한 명에게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사랑해주는 두 사람에 집중할 것인가, 혹은 남은 일곱 사람에게 주목할 것인가?

 

행복함이란 공헌감이다. 사실 인정욕구는 공헌감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다만 인정욕구를 얻은 공헌감에는 자유가 없다. 우리는 자유를 선택하면서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평범해질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은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등산이 아니다. 인생은 선이 아니라 점의 연속이므로 인생은 순간의 연속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야 한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진지하고 빈틈없이 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큰 목표나 목표의 달성과는 상관이 없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사실 여기를 읽으면서 삶의 목표나 계획성을 부정하는 듯 하여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다만 지금을 열심히 산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 무엇인가가 되어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후회가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마지막을 읽으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soul의 장면들이 생각났다.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나는 내 삶의 모든 시간을 살아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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