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부산여행을 계획하면서 피란수도로서의 부산을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부산근현대역사관에 방문하였다.
운영시간 : 화~일요일 09:00 ~ 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별도 해설은 없지만 전시물의 QR코드를 이용하여 해설에 참고할 수 있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은 원래 한국은행 건물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24년 초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본관과 별관으로 이루어졌는데, 본관은 전시관의 역할을 별관은 도서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상설전시는 3층과 4층에서 이루어진다. 3층 제1전시실에서는 1876년 개항부터 1945년 광복까지를 살펴본다.
조선은 운요호사건을 계기로 일본과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다. 조선은 부산항을 열어야 했고, 개항장에 들어온 외세는 부산의 모습을 바꾸어나갔다. 현재 부산역 일대는 일본인들이 살도록 조선 정부가 임대해준 땅인 부산구조계가 되었다. 일본과의 교역량은 빠르게 증가했다. 1883년에는 부산감리서를 설치하여 개항장의 사무와 외국과의 교섭을 담당하게 되었다.
해은일록은 부산항 감리서 방판을 지냈던 민건호의 일기로, 근대 개항장의 부산에 관한 기록이다.
결국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고, 철도와 전차의 발전은 조선의 물자와 사람을 빠르게 일본으로 이동시켰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어 영등포에서 부산역까지 14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었다. 부산역은 부산항과 밀접하여 시모세키와 부산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연락선을 통해 조선의 물건들이 일본으로 수탈당했다.
한편, 부산에는 전차가 들어서 관광산업이 많이 발전했다. 대표적으로 동래온천을 들 수 있다.
부산에도 동양척식주식회사(현 부산근대역사관 별관)가 세워졌고, 일제의 수탈은 심해져만 갔다.
부산에서도 3.1운동 등 독립운동이 활발히 펼쳐졌다.
전시관의 배경음악으로 8월 15일이라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산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도 살펴볼 수 있었다.
부산의 해외 선교사의 방이란 컨셉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었다.
4층 제2전시관에는 1945년 광복 이후부터 현대까지의 부산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었다.
광복 이후, 6.25전쟁으로 부산은 피란수도가 되었다.
부산은 3년간 대한민국 피란수도로서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였고, 대한민국의 최후 보루이자 피란민의 생활터전이었다.
피란민들은 판자집과 물부족 등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생활하였다. 국제시장은 피란민의 생활근거지였으며 피란수도 경제의 중심지였다. 상인들은 빼돌린 군수품과 구호물자, 밀수품까지 취급하였다.
전쟁의 와중에도 학교 교육은 멈추지 않았다. 노천교실을 열기도 하였고, 교과서도 없이 수업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피란수도 부산에는 많은 사람과 돈 그리고 시설 등이 집중되었다. 1960년대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에 맞춰 고도성장이 이루어졌다. 섬유, 금속, 화학, 고무 등의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크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산업화의 고도성장의 이면에는 인구 과밀화에따른 여러 사회 문제들이 숨겨져 있었다.
신발공장에 다니는 여공의 생활을 귀엽게 보여준 전시물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들의 젊은 시절은 보는거 같아 마음 한구석이 너무 짠하였다.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은 일제강점기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예쁜 도서관으로 재오픈하였다.
도서관의 공간이 여유있고, 세련되어 여기에서 보냈던 잠깐의 휴식 시간이 너무 좋았다.
너무 잘 꾸며진 전시관들이어서, 부산에 오면 꼭 들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