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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 탐방하기

안중근의사기념관

by 쫑쌤 2024.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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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을 엄청 감명깊게 보았다. 배우들의 열연과 노래도 인상깊었지만, 안중근 의사의 생애에도 너무 감동받았다. 오늘은 남산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다녀왔다.

 

관람시간 : 10:00~18:00

입장료 : 무료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추석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안중근의 삶과 사상을 알리고자 일제강점기에 조선 신궁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1970년 개관하였고, 2010년 안중근 순국 100주기를 맞아 단지 동맹을 맺은 12명을 형상화한 건물로 재개관하였다고 한다.

건물이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숨은 의미가 있었다.

 

기념관을 들어서면 안중근 의사의 조각상이 있다. 뒤에는 대한독립이라고 써진 핏빛(실제로는 검은색이다.) 태극기가 전시되어 있다. 안중근 의사가 대한 독립에 대한 의지로 왼손 약지를 끊은 후, 그 피로 태극기 위에 대한독립이라는 네 글자를 써 독립에 대한 의지를 천하에 알렸다.

 

 

안중근 의사는 한국에 통감부를 설치한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처단하여 독립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당시에는 1876년 강화도조약부터 1905년 을사늑약까지 30년간 조선과 대한제국은 외세의 침략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전쟁 등의 사건을 거치면서 일제의 침략에 대한 야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런 혼돈의 시기에  안중근 의사는 1879년에 태어났다. 

 

안중근의사의 가문은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하였다. 안중근의 큰 형 안공근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외교를 담당하였다. 또 한인애국단 활동을 지원하여 이봉창, 윤봉길 의거에 영향을 미쳤다.

 

동생 안정근 또한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 딸 안미생은 김구의 첫째며느리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을 하며 김구의 비서 역할도 하였다.

 

안중근은 진남포에서 학교를 세워 다양한 교육과 함께 군대식 훈련을 실시했다. 그러나 이내 안중근은 국내 계몽운동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망명을 선택하였다. 북간도를 거쳐 연해주로 도착한 안중근은 의병을 조직하여 독립전쟁을 결행하였다.

1908년 각지의 의병운동가들이 항일의병 결사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하여 전쟁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1909년 그리스키노의 하라마을에서 11명의 동지들과 동의단지회를 결성하였다. 동의단지회는 조국독립의 회복과 동양평화의 유지를 위해 헌신할 것을 목표로 삼고 왼속 약지의 첫 관절을 잘라 단지동맹을 맺었다.

 

왼손 약지를 끊은 후, 그 피로 태극기 위헤 대한독립이라는 네 글자를 써 독립에 대한 의지를 천하에 알렸다.

 

그러다가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대장대신 코코프체프와 만나 동양침략정책을 협상하기 위해 북만주를 시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안중근은 우덕순, 유동하 등과 함께 하얼빈으로 향했다. 10월 22일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 일행은 채가구역에는 우덕순과 조도선이, 하얼빈 역에는 안중근이 맡아 의거를 하기로 하였다.

 

의거 당시나 재판 당시의 모형을 볼 수도 있다. 재판에서 안중근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 또한 독립정신이 투철한 분이었다. 그녀가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너무 슬프다.

다른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이 편지와 함께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두 동생을 형의 사형 집행소식을 듣고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일제는 이를 거절했다. 아직까지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찾지 못하고 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하여 힘쓸 것이다

 

안중근의 유언은 아직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쉽게 설명된 전시여서 아이들도 볼 수 있고, 체험도 많았다. 실제로 휴일이라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신 부모님이 많으셨고, 안중근 의사의 업적에 대하여 아이에게 설명해 주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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